해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우리성씨의 자랑스런 일가 이수용제독의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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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천이한윤 작성일09-08-21 15:37 조회5,236회 댓글1건본문
무인(武人)으로 이어지는 명문가(名文家)
가전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 世守仁敬)의 전통적(傳統的)인 가훈(家訓)을 근본(根本)으로 조상의 얼을 이어받아 사성장군(四聖將軍)으로 해군 참모총장(海軍 參謀總長)을 지낸 이수용(李秀勇)대장(大將)은 온화(溫和)한 용모(容貌)에서 느낄수 있드시 성품(性品)의 후덕(厚德)함이 외적(外的)으로 느끼며 날까로운 눈초리와예지력(豫知力)은 타인을 압도하고 지적으로 삼박자를 고루 갖춘 화술(話術)은 과연 당대의 장군중에 장군이다. 30세(世) 이고 고려(高麗)의 수군명장(水軍名將) 이천(李仟(동암수공“東巖叟公”:대표적인 전적은 1256년 남도에서의 몽고군 방어와 온수현(지금의 아산만에 침공한 몽고군을 전멸 시키고 그들에게 붙잡혀 있던 100여명의 양민을 구하고 오히려 병기와 포로를 획득한 전과를 올리신 성웅이시다)의 23대(代 )손이고 예문관 대제학(藝文館 大提學)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인 문의공(文義公) 이언충(梨彦冲)의 21대 손이며 이조참의(吏曹參議) 판 나주목사(判 羅州牧使)의 18대손 그리고 후조당(後凋堂) 이용제(李容濟:1597년「선조30」정유 재란시 거제의 기문포 해전에 빛나는 명장)의 12대 현손(玄孫)이다.
그는1942년 4월 12일 전남(全南) 나주시(羅州市) 세지면(細枝面) 발산(鉢山)에서 아버지 이교은(李敎銀:초대 전남 도의원. 전남 매일신문 편집국장.한국 종합화학 주식회사 이사. 대한 전척공사 대표이사. 경인실업 주식회사 회장.전의 이씨 화수회 부회장)과 어머니 금성 나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 났다.
장군은 애국 애족 항일에 빛나는 명문학교인 광주일고(구 광주 서중학교:광주 학생사건의 발상지)를 졸업하였다. 그가 초등학교 시절에 6.25동란의 어지럽던 소년기를 지내는 동안 사회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국내의 불안정한 상태에서 해군 사관학교 제 20기로 입학 하였다.
해사를 졸업후 초급 및 고급장교 과정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1함대 사령관. 군수 참모부장. 정훈감. 해군 사관학교 교장. 작전 사령관 등을 역임 하였다)하였으며 특히 남해안 간첩 침투정의 격침을 비롯하여 삼면의 해상을 수호 하는데 한치의 오차가 없었으며 영어와 중국어등 다국의 어학에 능통한 장군은 그후 1999년 3월 30일 제 22대 해군 참모총장에 올랐다.
임기를 마친후에 대한 석유공사의 총수가 되었는데 해군 현역 당시에 발생된 서해안 해저 도자기 사건의 구설과 모략에 휘말려 대한 석유공사 의 사장직을 그만두고 지금은 대학 강단에서 후학들을 위해 강의를 하고 있다.
고향을 저만치 두고 객지에서 생업에 열심히 하다보면 고향은 물론 혈족관계를 접할 기회를 놓치고 세월이 그렇게 흘러만 가는데....그러나 우리 모-두는 근본이 있어 이 세상에 태어났고 실던 좋던 이웃과 교류하면서 살아가는데 다행이 우리는 명문의 후예로 지내게 된 것을 조상이 물려주신 큰 은덕이라 생각 하면서 조상 대대로 내려온 빛나는 전통을 계승하는데 개을리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것을 실천 하는데에는 결코 쉬운일이 아닌 것 같다. 발산 마을 앞에는 정유제란 당시의 명장(18세. 12대조)후조당의 정려각과 포충비가 있어 명문 씨족임을 빛내고 있으니 주위의 인근 주민들의 칭송이 자자하다. 이재 또 하나의 가층 기념관을 건립 한다면 해군 참모총장을 역임한 4성장군 이수용 제독의 찾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새롭게 건립할 장소를 생각 해본다.
댓글목록
월천이한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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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천이한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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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이글은 우리일가 이인석님의 제고에의한 것을 우리카페(http://cafe.daum.net/junuilee)에서 있는
일가의 내용을 보다 많은 후손들 젊은 이들에게 많이 알리고저 또 올렸습니다.